미국 국경을 향해 북상 중인 온두라스 이민자 수천 명이 과테말라에서 벽에 부딪혔다. 과테말라 정부가 물리력을 동원해 저지하고 나서면서다. 2차 저지선이 될 멕시코도 국경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이민자 행렬이 희망으로 삼던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 측에서도 “오지 말라”며 손사래를 치면서 이들의 아메리칸 드림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17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이날 과테말라 남동부 바두 혼도 인근 도로에서 이민자 행렬과 과테말라 군경이 충돌했다. 군경은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이들을 저지하다가 저지선이 무너지자 최루탄을 던지고 곤봉을 휘둘렀다. 부상자도 속출했다. 머리를 다쳐 붕대를 감은 한 부상자는 AP통신에 “우리는 중남미 형제들이다, 그저 문제 일으키지 않고 이곳을 통과하고 싶을 뿐”이라고 호소했다.
“7000~8000명 과테말라 진입”
이들 온두라스인은 굶주림과 마약, 폭력, 자연재해에 시달리다 지난 15일 온두라스를 떠났다. 16일 온두라스와 과테말라 국경에서도 충돌이 발생했지만 이주민 수천 명이 힘으로 밀어붙여 저지선을 뚫었다. AP통신에 따르면 과테말라 당국은 약 7000~8000명이 15~16일 사이 자국에 진입한 것으로 파악했다.
과테말라 당국이 저지에 나선 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도 한몫했다. 과테말라 정부는 코로나19 음성 확인서 등 필요 서류를 지참하지 않은 온두라스인의 국경 통과를 허용할 수 없으며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막겠다는 입장이다. 멕시코도 이동을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온두라스와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등 중앙아메리카 지역 세 나라에서 이민자들이 무리 지어 북상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현지에서는 이를 ‘캐러밴'(Caravan)이라 부른다. 자국에서 마약과 폭력, 굶주림과 자연재해에 시달리다 미국 또는 멕시코로 살길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캐러밴의 진입을 막기 위해 자국뿐 아니라 멕시코의 국경 경비 강화를 지원했다.
바이든 측 “미국 와도 소용없어”
이번 캐러밴은 미국까지 수천㎞를 걸어서 가는 것도 불사하겠다며 출발했다. 과거 캐러밴은 멕시코에서 난민 지위를 얻으면 1차 목적을 달성했다며 해산했다. 미국까지 걸어가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멕시코에서 난민 지위를 얻은 뒤 개별적으로 입국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경 정책을 뒤집겠다는 바이든 당선인의 공약에 “미국까지 가자”며 의지를 다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바이든 당선인 측은 “미국 국경에 와도 소용이 없다”며 난색을 보이고 나섰다. 익명의 바이든 인수위원회 관계자는 NBC 방송 인터뷰에서 “국경 정책은 하룻밤 사이에 바뀔 수 없다”면서 “지금 와도 입국할 수 없으니 오지 말라”고 했다. 그는 또 바이든 당선인의 이민개혁 법안은 “자국 내 이민자 문제를 우선으로 다룬다”고 덧붙였다.
앞서 바이든 당선인의 고문인 수전 라이스 전 국가안보보좌관도 지난달 스페인계 통신사와의 인터뷰에서 “국경이 완전히 개방될 것이란 말을 믿어서는 절대 안 된다”며 “그렇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현지 매체들은 바이든 당선인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포용적 이민 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논평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학자들과 이주민 단체는 바이든의 반(反) 트럼프 정책이 캐러밴 등 불법 이주민을 급증케 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취임 첫날 의회에 이민법 개편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바이든 당선인도 지난달 “현재 미국에 있는 1100만 이민자의 시민권 획득 요건을 완화하고, 캐러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미 지역의 경제 재건과 사회 안정화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source DAUM